마가 전체에서
본문비평에서 오래 쓰인 자입니다. 읽기 어색한 쪽이 원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. 필사자가 매끄러운 문장을 굳이 어색하게 만들 이유는 없지만, 어색한 문장을 매끄럽게 고칠 이유는 많기 때문입니다.
마가 1:2가 그 예로 자주 듭니다. “이사야에 적혀 있다”는데 실제로는 세 책이 섞여 있습니다. 다수 사본은 “예언자들에”로 적습니다. 어긋난 쪽이 원래이고 후대가 고쳤다고 보면 “이사야에”가 먼저입니다.
★ 그런데 이 자의 무게가 지금 논쟁 중입니다. ⚠ 「이 자가 틀렸다」는 말이 아닙니다 — 얼마나 먼저 대야 하는가가 갈립니다.
사본을 세는 것만으로는 못 정한다고 봅니다. 필사자가 무엇을 할 법한가를 물어 어색한 쪽·짧은 쪽을 먼저 놓습니다. 고전적인 편람들이 이 순서로 적어 왔습니다.
⚠ 약한 자리 — 「어렵다」는 판단이 사람마다 다릅니다. 어려워서 원래인지, 필사자가 실수해서 어려워졌는지를 이 자 하나로는 못 가릅니다.
사본이 아니라 본문끼리의 관계를 먼저 셉니다. 어느 본문이 어느 본문에서 나왔는지를 자료 전체의 일관성(coherence)으로 재고, 내적 기준은 그 뒤에 씁니다.
★ 물음 자체가 달라집니다 — 「원본」이 아니라 「처음 본문」(Ausgangstext)에 이릅니다. 전해지는 자료가 갈라져 나온 출발점이고, 글쓴이의 원고와 같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. NA28 의 공동서신부터 이 방법으로 다시 짰습니다.
⚠ 약한 자리 — 계보가 돌 수 있습니다(A가 B에서, B가 A에서). 그리고 남아 있는 사본만 셉니다 — 사라진 것은 계보에 안 들어갑니다.
마가 1:41이 가장 날카롭습니다. σπλαγχνισθείς(불쌍히 여겨)냐 ὀργισθείς(분노하여)냐 — “분노하여”가 훨씬 어렵습니다. 어려운 독법을 먼저 대면 그쪽이 원래입니다. ⚠ 그런데 그 읽기는 사본 하나에 가깝게 적습니다. 계보를 먼저 대면 거의 서지 못합니다.
★ 이 화면은 이미 골라 놓았습니다 — 저본이 SBLGNT 라 1:41 은 ὀργισθείς(분노하여)로 서 있습니다. ⚠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저본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입니다.
⚠ 어느 쪽이 옳다고 적지 않습니다. 두 자 다 지금 쓰이고 있고, 같은 자리에서 다른 답을 냅니다. ★ 이 도구가 하는 일은 그 갈림을 보이는 것까지입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