낱말을 다 알아도 문장이 안 읽히는 자리가 있습니다. 차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.
첫 세 절이 이 편의 요약입니다. 1절과 2절은 앞에 다른 말이 서서 동사가 둘째로 밀렸고, 3절부터 동사가 맨 앞입니다. 한국어와 정반대 자리입니다.
한국어는 「하나님이 / 하늘과 땅을 / 창조하셨다」로 동사가 끝에 옵니다. 히브리어는 동사가 먼저 옵니다. 창 1:3 을 그대로 옮기면 「말씀하셨다 / 하나님이 / 있으라 / 빛이」입니다.
★ 이것이 한국어 화자에게 제일 큰 벽입니다. 낱말은 다 아는데 어디서 끊어 읽을지를 모르겠는 것은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동사를 뒤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.
셈법을 밝힙니다. 절(verse) 단위로, 각 절의 첫 정형동사가 몇 번째 낱말인가만 셌습니다. 절을 마디로 쪼개는 판단이 안 들어가므로 사람 손을 타지 않습니다.
동사가 있는 절 294개 중 209개(71%)에서 첫 동사가 첫 낱말입니다. 그 209개 가운데 196개가 바익톨입니다 — 와이크톨 편 이 말한 그 사슬이 곧 이 어순입니다.
3번째가 12개 · 4번째가 6개입니다. 밀린 85자리에서 동사 앞에 서는 것은 명사가 41개로 가장 많습니다. 무엇을 앞으로 당겨 세웠는가가 그 문장의 힘이 실린 자리입니다.
⚠ 셈법을 밝혀 둡니다. 절을 마디로 쪼개 세면 사람의 판단이 들어가 수가 흔들립니다. 실제로 와우마다 끊어 세어 봤더니 「동사가 첫머리 100%」라는 뜻 없는 수가 나왔습니다 — 와이크톨이 와우를 제 몸에 달고 있어서 언제나 마디 첫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. 그래서 절(verse) 단위로만 셌습니다.
동사가 없어도 문장입니다. 히브리어는 「~이다」를 적지 않습니다. 한국어에도 「~이다」가 있으니 오히려 이 자리는 헷갈리지 않습니다 — 비어 있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.
319절 중 25절(8%)에 정형동사가 하나도 없습니다. 히브리어는 「~이다」를 적지 않습니다.
25절 중 7절은 분사 가 서술 노릇을 합니다. 분사 편에서 「관사가 붙으면 명사 쪽」이라고 한 그 꼴이 여기서는 문장의 술어가 됩니다.
긴 문장은 이 두 낱말로 이어집니다. 창 1–12장에 אֲשֶׁר 71개 · כִּי 50개입니다.
אֲשֶׁר 는 성·수를 안 바꿉니다. 한국어의 「~하는」처럼 한 꼴로 다 씁니다. כִּי 는 두 갈래로 갈리는데 형태로는 안 갈립니다 — 앞뒤를 봐야 합니다.
★ 읽는 차례는 이렇습니다. ①동사를 먼저 찾고 ②그 앞에 무엇이 당겨져 있는지 보고 ③אֲשֶׁר·כִּי 에서 안긴 문장을 끊습니다. 동사가 안 보이면 동사 없는 문장입니다.
★ 이 편이 걸리는 갈림길과 이 도구가 고른 것은 다른 화면에 있습니다 — 흔들리는 자리 · 강의록 · 이 도구가 고른 것. ⚠ 편 안에는 그 수를 적지 않습니다. 한 곳에서만 셉니다.
헬라어는 정반대입니다 — 동사가 절의 맨 앞에 오는 것이 열에 넷이 안 됩니다. 그 수는 저쪽에서 셉니다 → 절과 어순 — 무엇이 먼저 오나.
⚠ 두 수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안 됩니다. 헬라어는 자료가 절을 끊어 주고, 히브리어는 안 끊어 줍니다 — 위의 수는 어디까지가 한 절인지를 우리가 정해서 나온 것입니다. ★ 잰 자가 다릅니다.
창 1:2 는 동사가 둘째로 밀려 있습니다. 그것을 배경을 까는 문장으로 읽으면 「땅이 이미 그러했다」가 되고, 이어지는 사건으로 읽으면 「그리고 땅이 그렇게 되었다」가 됩니다.
★ 앞엣것은 혼돈이 창조 이전에 있었다는 읽기로, 뒤엣것은 창조 과정의 한 단계라는 읽기로 이어집니다. ⚠ 어순만으로는 안 갈립니다 — 우리가 센 것은 동사가 밀린 절이 85개라는 것까지입니다.
⚠ 어느 쪽이 옳다고 적지 않습니다. 갈린다는 것만 보입니다. → 기본 어순은 동사 먼저인가 주어 먼저인가 · 와이크톨