여기까지 카탈 과 이크톨 을 봤습니다. 남은 다섯 꼴은 그 둘과 같은 줄에 서지 않습니다.
층이 다릅니다. 카탈과 이크톨은 누가 하는지를 반드시 적습니다. 이 넷은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— 시제가 아니라 다른 것을 말하는 꼴입니다.
카탈은 꼬리에, 이크톨은 머리에 누가 하는지를 적습니다. 이 다섯은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. 그러니 「이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」를 물을 층이 아닙니다.
창 1–12장 · 부정사연계 91 · 분사 62(수동분사 5 포함) · 명령 30 · 부정사절대 12 · 청유 11 = 206개. ⚠ 흔히 인용되는 「52 · 42 · 28 · 11 · 8」은 칼 어간만 센 수입니다(141개). 어간을 다 세면 위와 같습니다 — 부정사연계는 히필이 28개나 됩니다.
분사는 「~하는 중인 것」입니다. 그런데 그것이 곧 「~하는 자」가 되기도 합니다.
가르는 것은 앞에 관사가 붙었는가입니다. 관사가 붙으면 「그 ~하는 것」이 되어 이름처럼 씁니다. 창 1–12장 분사 62개 중 관사가 붙은 것 13개 · 연계형 15개로, 합쳐 28개(45%)가 명사 쪽입니다.
★ 절반 가까이입니다. 분사를 「진행」으로만 배우면 절반을 놓칩니다.
어간별로는 칼 47(수동분사 5 포함) · 히필 7 · 피엘 3 · 니팔 3 · 히트파엘 2.
연계는 자리를 얻고, 절대는 힘을 준다. 연계형은 앞에 전치사가 붙어 「~하려고 · ~할 때」가 되고, 절대형 열둘은 넷이 같은 어근을 겹쳐 세우고 여덟이 둘씩 짝지어 나옵니다.
부정사연계 91개 중 41개(45%)가 앞에 לְ 를 답니다. 「~하려고 · ~하기 위해」가 됩니다.
36개(40%)는 맨몸입니다. 나머지는 בְּ(~할 때) 5 · כְּ 1 · מִן 1 · 와우 7 입니다.
부정사절대 12개는 갈라떨어집니다 — 넷은 같은 어근을 겹쳐 세우고, 여덟은 둘씩 짝집니다.
겹쳐 세운 넷은 창 2:16 · 2:17 · 3:4 · 3:16 이고, 짝지은 여덟은 창 8:3 · 8:5 · 8:7 · 12:9 의 네 쌍입니다. 열둘이 이 둘로 남김없이 나뉩니다.
명령 30개는 모두 2인칭입니다.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당연합니다.
2mp 15 · 2ms 12 · 2fp 2 · 2fs 1. 창 1:22 과 1:28 은 명령 넷·다섯이 잇달아 붙은 사슬입니다.
청유 11개는 모두 3인칭입니다. 앞에 없는 것에게 하는 말입니다.
★ 그런데 1인칭 청유 6개가 부정사연계 코드에 들어 있습니다. נִלְבְּנָה(창 11:3 벽돌을 굽자) 같은 것인데 코드가 Vqc1cp 입니다. 부정사연계 91개 중 인칭 꼬리가 붙은 6개가 그것입니다.
⚠ 형태 자료의 분류입니다. 감추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. 부정사연계는 인칭을 안 적는데 이 여섯만 적혀 있으니, 화면에서 Vqc 뒤에 인칭이 붙어 있으면 청유로 읽으십시오 — 창 11:3 · 11:7 의 넷과 창 12:2 · 12:3 의 둘입니다.
⚠ 그런데 같은 「우리가 ~하자」가 다른 코드를 받는 자리가 있습니다. 창 1:26 נַעֲשֶׂה(우리가 만들자)는 Vqi1cp — 이크톨입니다. 창 11:3 נִלְבְּנָה(우리가 벽돌을 굽자)는 Vqc1cp — 위의 여섯 중 하나입니다. 영어 대역은 둘 다 let us 인데 코드가 갈립니다.
★ 그래서 우리 화면은 창 1:26 을 청유라 부르지 않습니다. 「이크톨 · 비현실 · 1인칭 공성 복수」로 뜹니다. TAHOT 의 분류를 그대로 옮긴 결과이고, 고치지 않고 밝혀 둡니다 — 자료를 손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손댔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. 논쟁 갈래 가 이 이름표들이 어디서 왔는지 다룹니다.
한자리에 모았습니다. 앞의 두 편(카탈·이크톨)을 먼저 가려낸 다음, 남은 것을 이 표로 봅니다.
먼저 인칭 표시를 찾습니다. 꼬리에 있으면 카탈, 머리에 있으면 이크톨 입니다. 둘 다 아니면 이 다섯 중 하나입니다.
★ 확실한 길은 그대로입니다 — 화면에서 낱말을 누르면 형태 이름이 뜹니다. 세 번째 글자가 r 분사 · c 부정사연계 · a 부정사절대 · v 명령 · j 청유입니다.
★ 이 편이 걸리는 갈림길과 이 도구가 고른 것은 다른 화면에 있습니다 — 흔들리는 자리 · 강의록 · 이 도구가 고른 것. ⚠ 편 안에는 그 수를 적지 않습니다. 한 곳에서만 셉니다.
이 다섯 꼴은 누가 하는지를 안 적거나 한 인칭만 적습니다. 그래서 주어를 문맥이 채워야 하고, 거기서 읽기가 갈립니다. 창 1:26 נַעֲשֶׂה 를 청유로 보면 「만들자」는 부름이 되고, 이크톨로 보면 「만들 것이다」는 선언이 됩니다 — 누구에게 말하는가가 달라집니다.
★ 이 자리는 꼴만으로는 안 갈립니다. 1인칭 복수에서 두 꼴이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.
★ 자료가 이미 골랐습니다 — 그런데 규칙으로 골랐습니다. 오경에서 עשה 1인칭 복수 여덟 자리를 보면, 앞에 와우가 붙은 셋은 모두 권고형으로, 안 붙은 다섯은 모두 이크톨로 적혀 있습니다 — 창 1:26 은 뒤엣것입니다. ⚠ 「이 자리가 권고형인가」를 따져서 정한 것이 아니라 와우가 있느냐로 갈린 것입니다. ★ 그러므로 자료는 창 1:26 에서 그 물음을 묻지 않습니다. 우리 화면은 그 태그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.
⚠ 어느 쪽이 옳다고 적지 않습니다. 갈린다는 것만 보입니다. → 창 1:26 은 「만들자」인가 「만들 것이다」인가 · 왜 문법이 신학을 가르는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