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 장은 어간을 알아보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. 그것은 문법 갈래의 몫이다. 여기서는 어간에 붙은 뜻풀이가 어디서 왔고 무엇이 걸려 있는지를 다룬다.
0어간이란 무엇인가
히브리어 동사는 자음 셋을 뼈대로 삼고, 그 뼈대에 모음을 다르게 넣거나 글자를 덧붙여 일곱 벌로 갈린다. 이 일곱 벌을 어간이라 부른다.
우리가 센 것 — 창세기 1–12 의 동사 883조각
칼 648(73.4%) · 히필 126(14.3%) · 피엘 45(5.1%) · 니팔 41(4.6%) · 푸알 10(1.1%) · 히트파엘 9(1.0%) · 호팔 4(0.5%)
★ 넷에 셋이 칼이다. 그리고 아래 넷을 다 더해야 64조각, 전체의 7%밖에 안 된다. 「일곱 어간」이라는 말이 만드는 인상과 실제 분포가 다르다.
1피엘 — 육십 년 된 반론
교재의 설명
피엘 = 강조형. 가운데 자음이 겹치니 뜻도 강해진다고 본다. 「죽이다」를 세게 하면 「학살하다」가 된다는 식이다.
학계의 반론
강조가 아니라 「~한 상태로 만들다」이다. 죽인다는 것은 세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고, 세기와 무관하다. 1968년에 칼과 피엘이 짝을 이루는 동사를 전수 조사해 뒤집혔다.
우리가 센 것
창세기 1–12 의 피엘 45조각 가운데 「강조」로 옮겨진 것이 0건이다.
그 자리들은 복을 빌고(בֵּרַךְ) 이름을 부르고 명하고 거룩하게 하는 자리다. 세기와 상관없다.
⚠ 이 반론은 육십 년 가까이 됐는데 교재는 대체로 그대로다. 학계와 교재의 시차가 얼마나 큰지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.
★ 그렇다고 반론 쪽이 끝난 것도 아니다 — 2015년의 한 박사논문은 모든 용례를 다시 세어 그 반론의 틀도 절반쯤만 맞는다고 본다. 아래 자료 목록에 있다.
2★ 니팔 — 「수동이거나 재귀」가 절반에서 안 맞는다
니팔은 흔히 수동(당하다) 또는 재귀(스스로 ~하다)로 설명된다. 창세기 12:3 וְנִבְרְכוּ 를 「복을 받으리라」로 읽을지 「서로 복을 빌리라」로 읽을지가 그 설명 위에 서 있다.
★ 세기 전에 판정 기준을 적는다.
우리는 뜻을 판정하지 않는다. 니팔 한 자리 한 자리가 수동인지 재귀인지는 우리가 정할 것이 아니다.
대신 형태 자료가 그 자리에 붙여 둔 영어 대역이 수동꼴인지, 재귀 낱말(myself 따위)을 쓰는지로만 가른다.
⚠ 그러므로 아래 수는 자료의 판정이지 우리 판정이 아니다. 그래서 셀 수 있다.
창세기 1–12 의 니팔 41조각
수동 20 · 재귀·상호 1 · 그 밖 20
재귀는 창 3:8 「내가 숨었습니다」 하나뿐이다.
「그 밖」 스무 자리가 요점이다. 수동도 재귀도 아니다 — 좋아 보인다(נֶחְמָד 2:9·3:6) · 후회하다(נִחַם 6:6·6:7) · 기다리다(יָחֶל 8:10·8:12) · 썩었다(נִשְׁחָת 6:11·6:12) 같은 것들이다.
★ 여기서 멈춘다. 관찰 — 창세기 1–12 안에서 니팔의 절반은 수동으로 옮겨졌고, 재귀로 옮겨진 것은 하나뿐이며, 나머지 절반은 둘 다 아니다. 추측 — 「그러니 창 12:3 도 수동이다」. ⚠ 이것은 우리가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다.
한 자리의 뜻은 그 자리의 문맥이 정한다. 분포는 그 자리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 주지 않는다. 이 장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. 갈림길 카드는 흔들리는 자리에 있다.
3★ 히트파엘 아홉 — 그중 넷이 한 동사다
히트파엘은 창세기 1–12 에 아홉 조각뿐이다. 다 볼 수 있는 수다.
자리
낱말
자료의 대역
창 2:25
יִתְבֹּשָׁשׁוּ
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
★ 창 3:8
מִתְהַלֵּךְ
거니시는 — 하나님이 동산을
창 3:8
יִתְחַבֵּא
그가 스스로 숨었다
창 3:24
מִתְהַפֶּכֶת
도는 (칼)
★ 창 5:22
יִתְהַלֵּךְ
동행하였다 — 에녹이
★ 창 5:24
יִתְהַלֵּךְ
동행하였다 — 에녹이
창 6:6
יִתְעַצֵּב
마음 아파하셨다
★ 창 6:9
הִתְהַלֶּךְ
동행하였다 — 노아가
창 9:21
יִתְגַּל
그가 스스로 벗었다
★ 아홉 중 넷이 הלך「걷다」다
그리고 그 넷이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자리(3:8) · 에녹이 동행하는 자리(5:22·5:24) · 노아가 동행하는 자리(6:9)다.
같은 동사, 같은 어간이 창세기 1–12 에 넷뿐인데 그 넷이 이 자리들이다.
⚠ 이것도 관찰까지다. 「그러므로 이 어간이 하나님과의 동행을 표시한다」는 추측이다.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보면 이 꼴은 흔히 「이리저리 다니다」에 쓰인다 — 우리 범위 밖이라 우리는 못 센다.
★ 셀 수 있는 것은 「창세기 1–12 안에서 이 넷이 다」라는 것뿐이다. 그 사실이 값있는 이유는 스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— 네 자리를 다 열어 볼 수 있다.
4★ 어간 판정 자체가 갈리는 자리
지금까지는 어간이 정해져 있다고 놓고 이야기했다. 그것부터 갈리는 자리가 있다.
창 4:26 · 6:1 · 10:21 · 10:25 — יֻלַּד「태어났다」
우리 화면은 이 넷을 푸알이라고 적는다. 그런데 이것을 「칼의 옛 수동」으로 보는 쪽이 있다 — 칼에도 원래 수동꼴이 있었는데 나중에 사라졌고, 그 흔적이 몇 자리에 남았다는 것이다.
이 판정이 문법 밖으로 이어진다. 「칼의 옛 수동」으로 보는 쪽은 그것을 이른 히브리어의 표지로 삼고, 본문 연대를 재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쓴다. ★ 어간을 무엇이라 부르느냐가 연대 논증의 한 칸이 된다.
⚠ 우리 화면은 「푸알」이라고만 적는다.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도, 그 이름이 무엇에 쓰이는지도 화면에 안 나온다. 자료가 이미 한쪽을 골랐고 우리가 그대로 보여 준다.